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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우리 딸냄이 세상에 나왔다.


+ 5 Days 때 사진


배 모양이 뽈록 앞으로 뾰족하게 나와서 다들 아들일 거라고 했는데,

예상을 깨고...그야말로 서프라이즈...

딸!!!


이로써 양가의 기대에 부흥하게 되었다.

시댁에는 손주만 넷, 친정에는 손주 넷에 손녀는 달랑 하나.

그래서 모두들 은근...아니 대놓고?! 딸이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야 아들도 좋고 딸도 좋지만,

가족들에게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어 뿌듯하다.




#


출산이 두렵지 않았던 나.

막달에 미친듯이 활동적이었고 몸도 가볍고 좋아서,

이런 상태라면 순산은 시간문제 아닐까?..라며 혼자 망상에 부풀어 있었다.


이론대로라면,

정석대로 진통이 천천히 오기 시작하다가... 

규칙적으로 5분간격으로 오거나 양수가 터지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서 몇 시간만에 쑨풍- 하고 잘 낳겠거니.

아니 그러길 간절히 바랬지.


물론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어쨋든 중요한 건 아이의 건강...그리고 나의 건강...

어떻게든 건강하게 세상에 나와준다면 더 바랄 게 없었지.


아무튼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 불발ㅠㅠ


세월호 사고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파 

밤새 잠을 설친 그 다음날...


잠을 못잔 것 치곤 컨디션이 멀쩡해 

오후 내내 친구들과 밖에서 보내고 왔는데,

그날 저녁 가진통을 동반하며 이슬이 비쳤다.


다음날은 양수가...그런데 그게 빵-하고 터진게 아니라, 

역시나 진진통이 아닌 가진통을 동반하며 찔끔찔끔 새기 시작...


새벽 세시에 병원에 갔더니 진통이 오기 전에 양수가 터지면

아이가 세균에 감염될 위험이 있으니 바로 입원해서 양수검사하고 

진통이 올때까지 기다려 봐야 한다고.


병원에서 가진통도 감사히?! 참으며 (아이만 나와 준다면...)

양수가 터진후로 36시간 정도를 기다렸지만 배만 아프지 아이가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이튿날 새벽엔 너무 답답하고 서러워서 조산사 붙들고 눈물을 펑펑 쏟았드랬다.


그렇게 병원에서 두 밤을 보내고 

아침 9시에 내진 후 10시에 옥시토신(촉진제) 투입 시작.


자연분만인 경우 무통주사 없이 분만하려 했지만,

촉진제 투입이후 3분에 한 번씩 오는 강렬한 진통에...

남편 손을 붙잡고 울고 불고..밤새 지쳐서 더욱 아프고 서러웠다.


최소 10시간 걸린다는데 이 상태로 열시간을 버티기란 자신이 없어,

무통주사를 맞겠느냐는 간호사의 물음에 울면서 고개만 끄덕끄덕--;;;;

하루종일 기다려 저녁 9시 40분에 분만했다.


하루종일 시술을 진행시킨 조산사가 퇴근시간이 다가와 교체를 하면서...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며...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되요! 

힘을 줄 때가 오면 응가를 할 때처럼 힘껏 아랫쪽에 힘을 주세요. 

그러면 아이가 나올 꺼예요."...라며 화이팅!!!을 외치고 떠난 후...


조산사 1명, 간호사 1명, 남편과 함께 

은은한 조명과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분만에 돌입.


정말로 응가가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긴했는데...

머리에 핏줄이 설만큼 소리를 지르며 힘주기 시작한지 약 20분만인가 

뭔가가 쑤욱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게 아이인지 뭔지...긴가민가 했는데

간호사가 급 가슴팍의 분만복을 반쯤 내리더니 

뭔가 미끄럽고 뜨뜻한 것을 내 품에 덥썩 안겨주었고,

이 까무잡잡한 아이는 눈을 질끈 감은채로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분만실 들어간지 11시간 40만이었다.


조산사가 태반을 꺼내 조사하고 절개부위를 꿰메는 사이

태어난지 채 10분도 안 된 아이가 내 품에서 젖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니 

한없이 신기하기만 했다.


분만을 함께한 남편은 감동에 눈시울이 자꾸만 젖어들고 있었지만...

오히려 나는 어리둥절함에 무덤덤하게 젖을 물리며

남편과 이 낯선 아이를 번갈아가며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생각했던만큼 순탄했던 건 아니지만....

이 모든 게 끝나고 나니 너무나 감사하다.

(쉽게 낳는 사람들도 많지만 더 힘들게 낳는 사람들도 많으니..)


다른 촉진제까지 추가로 쓰지 않고

제왕절개까지 가지 않고 순탄히 진행된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아무탈 없이 세상에 나와줬으니 

정말로 더 바랄 게 없다.




#


마치 쓰나미처럼 한번에 찾아온 변화들...

우리 세 식구는 지금 폭풍 적응 중이다.


조카가 다섯이나 되는 나이지만,

똥귀저기 한 번 갈아본 적 없는 나와

조카가 넷이지만 똥귀저기 한 번 갈아본 적이 없는 남편.

둘 다 촛짜 중에 촛짜.


눈물나게 행복한 일이긴 하나... 

집에 돌아온 처음 며칠은 남편도 나도 힘이 들었다.


행복함이 커서 힘들다는 생각을 못하다가도 

조그만 일에 눈물을 펑펑 쏟는다거나

신경질적이 된다거나.


잠을 설치고도 소머즈처럼 에너지가 넘치다가도

급 호흡이 어렵고 몸에 힘이 쫙 빠진다거나.


하루는 내가 극도로 예민해 남편이 쩔쩔매다가,

어느날은 지치고 소심해진 남편의 모습에 내가 너무 안쓰러워지고.


그래도 그렇게 처음부터 함께 보대낀 덕분에

아주 빨리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누군가 집안일을 도와 주고 몸조리를 해줬으면 나도 남편은 편했겠지만

그 후에 다시 세식구가 적응을 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병원에서 한 번 적응하고, 집에 와서 다시 한 번...

그리고 세식구가 남았을 때 또 한번..

결국 적응을 세 번 해야하는 셈이니.


힘들고 서툴러도...

처음부터 아빠와 둘이서 부딪혀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금 세식구가 사는법을 나름 터득해가고 있고...

처음에 아이 다루기를 무서워하고 소극적이던 남편도 많이 적극적이 되었다.


매일매일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조금씩 알아가는 이 과정...

이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다.



#


아이를 뱃속이 아닌 품에 안은 그 순간부터...

모성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 내가 생각했던 모성이란...

'모성=본능'일 거라는 생각이 컸다.


아이를 뱃속에 아홉달 품었고 내 핏줄이기 때문에 

모정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일 거라 생각했고.


아이를 낳고 작은 언니에게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더니,

언니는 "축하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겠구나"라고 답장을 보냈다.

아마 언니는 첫 아이를 낳았을 때 그런 기분이 들었나 보다.

아마 사람마다 다르겠지.


나는 언니에게...

"음..글쎄..그것보다는..나는 너무 이 아이가 낯설었고...

나를 쏙 빼닮았음에도 불구하고 얘는 대체 어느별에서 온 누구?..라는 생각이 들었어." 

....라고 답했다.


그 어떤 아이라도

 이렇게 작고 약하다면 보살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아마 딱 이만큼 신기하고도 낯설고도 예뻤을 것 같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어르고 달래고

하루종일 아이가 괜찮은지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는 과정에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사랑을 느낀다. 


아이를 낳은 후 내가 알게 된 모성과 모정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러니까 낳은정보다 키운정이라는 그말이 

딱- 가슴에 와 닿는다.


 


#


임신기간을 즐겁게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답답하고 힘이 들었었다.


출산과 함께 이 지루한 고통이 끝날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임신했을 때를 즐기라는 모든 육아 선배님들 말을 

푹풍실감하고 있는 요즘.

하.하.하.


아이가 이렇게 24시간 껌딱지처럼 붙어 있을 줄이야.

하도 젖을 달라 보채니 젖꼭지는 너덜너덜..

이렇게 아플 줄이야ㅠㅠ


젖은 안 나와도 걱정, 너무 많이 나와도 걱정.

늘 축축하게 젖어있는 셔츠들...기분도 축축ㅋㅋ

우아한 생활은 저 멀리..멀리..바이바이.

(그래도 젖이 잘 나오는 것에 감사-)


아이가 잠자는 틈은 30분이건 1시간이건 2시간이 됐건,

너무나 소중할 뿐이고....


밤에 30-40분만마나 깨지 않고,

2-3시간씩 연속으로 자줄 때면 너무나 고마울 뿐이고...ㅎㅎㅎ


아가가 잠드는 그 순간부터...

나의 뇌는 이 틈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광속으로 그려지지만,

일들을 다 마치기도 전에 아이가 잠에서 깨기 일쑤ㅋㅋㅋ

오..나의 껌딱지...


언니에게 문자로...

"언니, 왜 이런이야기 자세히 안 해줬어???

옆에서 자주 지켜봤는데 이런 줄 난 왜 몰랐지....?.."라고 보냈더니...


언니 왈...

"뭐 그땐 니가 관심이나 있었나. 말해도 흘려 들었겠지...하하하"였다ㅋㅋㅋ


암튼 첫날은 분만쇼크로 약간 어벙벙했고,

둘째,셋째날은 24시간 수유로 약간 쇼크상태였다가...

금세 마음을 단디 먹고 잘 적응해가고 있는 중.


엄마가 되면 누구나 강해지는가 보구나.

지난날 늘 피곤해하고 게을렀던 나 자신을 돌아보니

어디서 이런 힘과 의지가 나오는지 신기하다.


늘 불평 불만을 입에 달고 살던 내가 

그저 묵묵히 아이를 어르고 먹이고 재우고 할 때마다...

남편은 나를 미소띤 얼굴로 바라보곤 한다.


늘 한 없이 기대고 보호받으며 살던 철없는 아내에서,

완전히 의존적인 한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엄마로...


평생 철 없이 살 줄 알았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철이 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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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엄마라면 모두가 겪는 

어쩌면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들이겠지만..

안부도 전할 겸 주절이 주절이 적어보았네요.


아가도 저도 잘 있습니다.

이 안부 한 줄을 적는다는 게 말이 많아졌...^^;;;;


조만간,

또 안부 전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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