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우리가족의 신년 파티

본문

2025년.

나는 새해부터 아무런 계획 없이 빈둥거렸다.

왜 쉬었다는 생각이 안들고 빈둥거렸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수험생이 공부는 안 하고 책 펴놓고 딴생각한 그런 기분이 든다.

습관적인 죄책감 같은 거.

 

새해인데 왜 더욱 의욕이 없지?

원래 새해에는 새해 계획도 세우고 뭐라도 시작하지 않나..?

열심히 한 거라곤 드라마 한 편 정주행한 거랑

핸드폰은 열심히 본 것 같아 허무하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프랑스 가족들이 모두 우리 집으로 모여서

미리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우리 가족까지 13명.

 

아니, 내가 누나가 둘이나 있는 프랑스 막내한테 시집와서

이런 대명절을 치르다니, 하마터면 명절증후군 생길 뻔 ㅋㅋㅋ

 

두바이에 살 때는 크리스마스 때 온 가족이 1주일 동안 왔었기도 하고

재작년에는 아버님 팔순을 우리 집에서 다 같이 모여 2박 3일 동안 파티를 하기도 해서

처음은 아닌데 이상하게 이번에 더욱 부담이 많이 갔다.

일 하면서 준비하는 게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 큰 행사를 치른 후 며칠 더 일을 하고

알프스 스키장에 가서 1주일 열심히 놀다 왔다.

이것도 우리 집 연중행사.

 

새해를 며칠 앞두고 집에 돌아왔는데, 돌아온 그날부터 계속 빈둥거렸다.

아이들도 며칠 동안 잠옷만 입고 놀 정도로 방치하다가

목요일에는 영화관, 금요일에는 수영장 데려간 게 전부.

 

무기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신년파티를 하긴 했는데 그게 아이들 때문이었다.

 

젊었을 때는 새해파티는 늘 했던 것 같다.

새해라니, 그 보다 파티하기 좋은 핑계가 어디 있어.

어느 날부터 파티는 좋은데 새해파티는 굳이 안 계획하지 않게 됐다

새해에 파티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래도 작년엔 친한 친구들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가긴 갔었고

올해는 다들 다른 계획들이 있거나 초대받은 곳이 멀거나 해서

내가 우리 집에서 기획하지 않으니 마침내 내가 원하던 데로 아무것도 안 하게 돼서 좋았으나

문제는 이제 아이들이 신년파티를 하자고 졸라댔다.

 

그래 그까짓 거, 엄마가 해줘야지.

넷이 맛있는 저녁 먹고 12시 되기 전에 자기로 하고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샴포미(Champomy), 우리는 샴페인.

 

새해부터 과음하기 싫어서 일부러 남편에게 반 병 짜리 준비하도록 부탁.

근데 결국 요 거 반 병 다 먹고 레드까지 한 병 다 해치우고 진토닉까기 한 잔씩 했네.

아휴.. 예전에 비하면 뭐 그렇게 과음한 것도 아닌데 다음날 힘들었다.

 

이상하게 남편이랑 둘이 마시면 더 빨리 취하고 숙취가 더 있는 듯.

아무래도 둘이 마시면 좀 빨리 마시게 돼서 그런 것 같다고 분석해 봄.

 

샴포미 소개를 굳이 해보자면...

(아이들이 없었을 때는 몰랐던 샴포미라는 존재 ㅋㅋㅋ)

탄산으로 된 사과주스인데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서

우린 아이들 생일이나 친구들 초대할 때 꼭 준비한다.

안 좋아하는 애들도 있지만 대부분 좋아하는 것 같다.

 

탄산 사과주는 다른 브랜드도 많고 좀 더 고급진 것들도 많은데

아이들이 이상하게 아이들이 샴포미를 제일 좋아한다.

 

 

크리스마스 때 푸아그라(Foie gras), 관자, 양고기, 연어 등 웬만한 건 다 먹어서

요번엔 소고기 안심으로 준비했다.

 

남편이 여기에 생푸아그라 구워서 얹는 로시시(Rossini) 스테이크를 좋아하지만

푸아그라 몇 번 먹었더니 질려서 그냥 스테이크만 굽기로 하고

 

오스 아 모엘(Os à moelle), 골수도 몇 개 공수해 옴.

오븐에 구운 골수는 아이들도 너무 좋아한다.

난 느끼한데 아이들이 더 잘 먹음.

 

 

큰맘 먹고 도우까지 직접 만들어 라비올리도 만들었다.

심지어 삶은 대게를 사다가 살을 다 발라서 살에 새우살 섞어 소를 만들고

게껍질로 크리미 한 비스크 소스를 만들었다.

새우 머리는 버터에 볶아 새우버터도 만들어 곁들였다.

 

귀찮은데 할 건 다했어.

오랜만에 요리 좀 한 기분이 나는구만 ㅋㅋ

 

 

여기에 연어알 올렸으면 비주얼도 식감도 더 좋았겠지만

우리 넷이 먹는데 그것까진 생략하고

시트롱 카비아흐(Citron Caviar) 를 좀 뿌렸다.

 

 

씨트롱 카비아흐는 카영어로는 핑거 라임(Finger Lime)이라고 부른다고.

손가락 한 두 마디 크기의 레몬의 한 종류인데

새콤한 레몬알이 케비어처러럼 톡톡 터져 씹히는 맛이 있다.

연초록, 연분홍, 연노란색 등 세 가지 색이 있다.

 

 

소스는 작은 유리병에 든 트러플로 소스로 만들었는데 사진엔 없네.

구운 알감자와 브로콜리, 시금치 퓌레 사이드로 곁들였다.

 

 

역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안심.

한국 소고기값에 비할바는 아니겠지만 요즘 안심값도 많이 올랐음.

안 오른 게 뭐겠냐만은...

 

이렇게 먹고 나니 배가 터질 것 같아서 디저트를 먹을까 말까.. 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릇 치우고 설거지하는 사이 틀어놓은 음악에 흥이 돋아서 

아이들 둘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남편 설거지 도와주던 나도 합세.

셋이서 추다가 설거지 다 한 남편도 합세해서 넷이서 광란의 댄스파티..?

이게 아이들하고 가능하더라구 이제 ㅋㅋ

참고로 울 애들은 만 10세, 7세다.

 

내가 좀 흥겨운 음악을 주로 트는데 그래서 그런지 애들이 흥부자들.

자정은 넘기지 않았지만 정말 재밌게 놀았다.

 

 

놀고 나니 다들 디저트 먹을 배가 다시들 생겨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생크림 칙칙 뿌리고 베리류 과일 얹어서 바로 디저트 대령.

사실 귀찮아서 디저트는 안 만들었는데 이런 즉석 디저트도 나쁘지 않다.

 

연말연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고

파티 준비하는 것도 솔직히 많이 귀찮았는데

오롯이 우리 가족끼리 보내는 이 즐거운 시간이 너무 감사한 날이었다.

 

육아하면서 나를 다스리고 다스려도

그게 잘 되지 않아서 우는 날도 많았었는데...

아이들한테 소리 지르는 내 모습에 자괴감도 많이 느껴봤고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이 들곤 했었다.

 

엄마라는 역할에 나는 너무 많은 의무만 부여했지

정작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그 좋은 시간들을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만큼 커서

어느새 우리 가족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서로 적응하고

많이 안아주면서 같이 살아가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

 

그런 면에서

 지난 2024년이 나에게 나름 뜻깊은 한 해였던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이 행복한 아이들로 잘 커가고 있는 것 같아 안심한 한 해였고

아이들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던 나도 엄마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갈 길은 멀고..

좀 있음 큰 아이에게 사춘기가 오겠지만ㅠㅠ

아 벌써 무섭...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오늘부터는 좀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네.

늦었지만 2025년 계획을 한 번 생각해 볼까나.

일단 운동을 다녀와야겠다^^

 

-----

 

 

2025년 한 해, 모두들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반응형

'프랑스에서 살아가기 > 프랑스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무화과나무가 주는 행복  (5) 2021.09.12
프랑스로의 컴백  (2) 2021.09.03
엄마의 시간  (5) 2016.02.15
빙글빙글 도는 일상  (0) 2016.01.31
해피뉴이어_안부  (8) 2016.01.05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